주절주절 일기.
엄마는 부잣집 딸이었습니다. 집에 식모도 있었고, 옷은 맞춤옷밖에 입지 않았던. 쿠키와 빵을 매일 구워 먹었고, 바이올린을 배웠던 엄마는 가난한 아빠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가 생겼죠.
가진 거라곤 젊음 뿐이었던 아빠는 단칸방에서 신혼 살림을 차렸고 엄마는 시누이들의 도시락을 싸 가며 결혼식도 치르지 못한 채 살았습니다. 뱃속의 아기를 지우려고 했지만 끝내 지우지 못했고, 그렇게 제가 태어 났습니다.
늦게나마 외할아버지의 허락을 구해서 결혼식도 올리고, 동생도 태어났지만 단칸방에서 단칸방으로 옮기는 것이 전부였던 궁핍함은 부잣집 딸이었던 엄마를 억척스럽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경제력이 전무한 아빠를 대신해서 엄마는 보험도 팔아보고, 파출부도 나갔습니다. 식당도 나갔고, 노래방 카운터도 봤습니다. 그동안 아빠는 우리와 친하게 지냈던 아줌마와 바람을 피웠습니다. 결국, 엄마와 아빠는 서로의 바닥을 보여주며 헤어졌습니다.
엄마는 몸집은 작아도 날씬하고 예뻐서 어딜 가든 눈길을 사로잡고는 했습니다. 내 기억 속 엄마는 당당하고 씩씩했습니다. 나와 내 동생의 손을 꼭 붙잡고, 여기 저기 안 다닌 곳이 없었습니다. 생활비 한 푼 주지 않는 아빠 때문에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도 나와 내 동생의 아침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차려냈습니다.
엄마는 서른 전에 저를 낳았습니다. 저는 올해 서른하고도 여덟 살이 되었고요. 곧 있으면 마흔이 됩니다. 마흔은 엄마가 가장 외로웠던 나이이기도 합니다.
검버섯이 피고, 자꾸 제 눈치를 보고, 싼 값의 쇼핑만을 고집하느라 남루해진 엄마는 오늘 저의 신혼집에 와서 티비만 하루종일 보다가 갔습니다. 돈이 없어서 식빵 하나만 사 들고 온 엄마는 그게 미안해서인지 자꾸 너스레만 떨었습니다.
다른 부모들은 더 보태 주려고 안달인데, 어째 우리 엄마는 와서 받아 가기만 하는 걸까. 돈이 없어서 저에게 대신 쇼핑을 부탁하기도 하고, 저에게 용돈을 받아 가기도 하는 엄마라니. 갑자기 확 짜증이 났습니다. 초라한 엄마의 처지가 싫어서요.
엄마는 커피 한 잔을 몇 시간 째 마셨습니다. 커다란 티비 앞에 앉아 하염없이 티비만 봤습니다. 깔깔 웃기도 하고, 끌끌 혀도 찼습니다. 망부석처럼 그렇게 앉아서 티비만 봤습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 엄마를 따라 나섰습니다. 아파트 입구까지 바래다 주고 돌아서는데, 눈가가 시큰했습니다. 눈치 좀 보지 말라고 한 소리를 하고 돌아섰던 참입니다.
엄마를 실컷 미워하고 싶습니다. 속에 있는 제 모든 이야기를 막 퍼붓고도 싶습니다. 하지만 종종걸음으로 바삐 걷는 자그마한 엄마를 보면 저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미운데 밉지가 않아집니다. 미워할 수가 없습니다. 미워해서는 안됩니다. 그 마음이 저를 너무 괴롭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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